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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인생, 멋진 인생! 모범선수상 수상자 이효승(보도자료 8월14일자)
작성일
2005-08-19 00:00:00.0
작성자
운영자
조회수
5827

□ 별난 인생, 멋진 인생! 모범선수상 수상자 이효승

- 경륜은 내 인생, 챔피언의 꿈! 아직까지 유효하다.

이번에 2005년도 상반기 모범선수상을 수상한 이효승(39·3기) 선수는 별난 인생 역정을 걸은 선수로 유명하다.

자전거하이킹이 계기가 되어 자전거와 연을 맺은 후 경륜 선수가 되기까지는 12년의 시간이 걸렸다.

고교생 이효승은 아버지의 권유로 자전거하이킹을 따라 나서며 처음으로 자전거에 재미를 붙인다.

어릴 때부터 다리 하나만은 튼튼했던 이효승을 본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이효승에게 사이클 선수를 해 보라는 농담반진담반의 말을 건넸고, 그때부터 이효승은 사이클과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어른들의 말에 자극을 받은 이효승은 바로 개인자격으로 서울사이클연맹에 가입을 해 버린다.

전문적인 지도를 받지 못했기에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사이클에 대한 오기와 열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놀기만 좋아하던 장난꾸러기 소년이 사이클을 인생의 꿈으로 삼은 것은 이때부터이다.

하지만 소년 이효승이 경륜 선수 이효승이 되기까지는 그때부터 12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이클 시합 출전을 시작한 지 얼마 후 사업의 사업실패로 이효승은 자전거를 접어야만 했다.

개인자격으로 사이클 대회에 출전할 장비를 구입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고교 졸업 후 이효승은 어려워진 집안을 돕기 위해 두부장사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처음해 보는 장사였지만 천성이 밝고 활동적이었던 이효승은 두부도 잘 팔았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한 이효승은 단기사병으로 군에 입대한다.

단기사병으로 입대한 것이 이효승이 자전거와의 연을 계속 잇는 계기가 되었다.

야간경계 근무를 서며 낮에는 한국체육대학교 앞의 자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다.

자전거 가게에서 일하며 자전거에 대해서도 배우고 진승일 선수 등과도 만났다.

그때 만난 선수들은 뒤에 이효승이 경륜선수가 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군 제대 후 이효승은 화물차 운전, 택시 운전 등을 하며 동생들의 학비도 벌고, 집안에도 도움을 주며 살았다.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가던 어느날 택시손님들이 "경륜장 갑시다!"하는 말을 듣고 경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날은 경륜장 가자는 손님을 내려다 주고 본인도 경륜장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오랜만에 자전거 경주를 보며 그 오래 전에 잊었던 자전거에 대한 꿈이 되살아났다.

경륜경주를 보며 "그래 내가 갈길은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그의 경륜에 대한 첫 감정이었다.

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그가 무작정에 경륜에 뛰어든다는 큰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에 자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선수들에게 연락을 취해 자체적인 테스트를 받고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들은 후 마음을 정했다.

"그 때는 정말 너무 기뻤습니다. 아직 선수도 아니었는데 경륜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요"

이효승은 그때부터 2년간이 가장 바쁘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경륜훈련원 입학 준비를 위해 이효승은 1년간 낮에는 도로연습을 하고 밤에는 택시를 몰았다.

"정말 하루가 25시간이었으면 생각이 늘 있었다. 그만큼 바빴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강훈련 덕분에 이효승은 우수한 성적으로 제3기 경륜선수 후보생에 합격한다.

훈련원 시절에도, 택시회사 사장님의 배려로 훈련원 합숙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택시를 몰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해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경륜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2년을 보낸 후 이효승은 1996년 경륜선수로 경주에 나섰다.

"늘 성실하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려고 했습니다."

1996년 경륜 입문 이후 이효승은 꾸준한 기량 향상을 보이며 특선급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굳혀 갔다.

그가 생각하는 몸이 가장 올라갔을 시기는 1999년이다.

"1999년 어느날 훈련을 하는데 힘이 확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기분과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잠자리에서도 계속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6개월을 정말 단내 나도록 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해 6월 당시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주광일을 넘고 특선급에서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다음날 경주에서 낙차로 큰 부상을 입는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고 아쉬운 때가 그 때입니다. 한창 좋았는데 그 모습을 한번밖에 못 보여줬으니까요."

"다시 그 감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언제가는 다시 돌아오겠죠"

"하지만 아직도 제 꿈은 챔피언입니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 꿈이 있기에 저는 자전거를 탑니다."

벌써 우리 나이로 40년을 맞은 둘 딸의 아버지인 이효승 선수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띄며 파이팅 넘치는 경주를 펼치고 있다.

자전거에 대한 사랑, 그리고 팬들에 대한 감사함을 가슴에 안고 이효승은 오늘도 패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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